이번에 걸린 감기는 은근히 기운을 빼 놓는다. 열이 많이 나지도 않아서 그냥 가볍게 지나가려니 했는데 걸린 지 이 삼 일 후에는 목이 부어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아서 마침 LA에 사는 딸에게서 온 전화도 받지 못하고는 이러다가 교통 사고 이후에 수술로 회복한 목소리를 또 잃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했다. 목소리가 어지간히 회복되니 기침과 무기력증에 시달렸다. 어저께 밤에는 식은 땀을 한 동이 가량 흘리고는 또 오한에 시달렸다. 땀을 푹 냈으니 이제 감기도 물러 가겠지.
어릴 적에는 감기에 자주 걸렸다. 한 겨울철에는 감기에 몇 차례씩 걸리곤 했는데 2,3일 앓다가 땀을 푹 내고 나면 씻은 듯이 낫고는 했다. 감기에 걸려서 고생했던 기억 보다는 아픈 동안에 어머니의 사랑을 나누어 갖던 기억이 더 난다. 어릴 적에 어머니는 장남에 대한 편애가 매우 심하셨다. 늘 술과 여자에 빠져 밖으로만 나도는 아버지 때문인지 자식 사랑은 장남에게만 외골수로 퍼붓다싶이 했다. 둘째 아들인 내가 형과 싸우면 불문곡직하고 나만 야단치거나 때리시기만 했다. 코피가 나거나 손을 베어서 피가 나는 정도로는 어머니에게 말해봐야 야단만 맞으니 솜으로 콧구명을 틀어 막거나 피나는 곳에 헝겊을 붙이거나 해서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그러나 감기에 걸려서 열이 펄펄날 때에는 어머니의 사랑을 나누어 받을 수 있었다. 머리를 짚어 보시고는 열이 심하게 난다 싶으면 시간에 맞춰 쓰디쓴 가루 약을 먹이고 아주 드물게는 등에 업어서 재우기도 하였다. 업혀서 어머니 등을 통해서 들려오는 웅얼웅얼하는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평화로와져서 금새 잠이 들곤 했다. 어머니가 나에게 관심을 표하는 일이란 드문 일이었기에 감기 기운이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어머니의 관심을 끌 때가 왔구나, 하고. 그러나 어린 아이의 감기란 오래 가지 않아서 2,3일 지나서 땀을 푹내면 금새 낫기 마련이었다. 새벽녘에 잠에서 깨어 이마를 짚어보고 싸늘한 기운을 느끼면 얼마나 서운했던지…
이제는 세월이 흘러서 90세가 넘은 초라한 노인이 된 어머니의 모습에서 옛날에 나를 업어주시던 젊었을 때의 모습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어쩌다 자식들이 찾아 오면 과장된 몸짓으로 기력이 없음을 호소하신다는 여동생의 말을 들으면 정말 세월이 무상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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