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장영희 교수
엄마!
‘엄마’란 우리 각자의 전 생애에 있어 크나큰 의미를 지니는 존재임이 틀림없다. 푸근한 두 팔로 우리를 감싸 안아 세상 근심, 걱정을 녹여주시던…, 넓은 등으로 우리를 업어 아픔을 잠재워 주시던…, 그리고 한없는 낙담으로 하얀 밤을 지새울 때 든든한 그 뿌리로 우리를 꽉 매어주시던 끝없이 깊고, 넓고, 참으로 강인한 그 이름은 바로 ‘엄마’일 것이다.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 아버지를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썩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위의 글은 2009년 5월 9일 12시 50분경 서강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장영희씨(57세)가 숨을 거두기 직전 병상에서 엄마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의 내용이다.
가슴저린 글을 남긴 그녀는 저 하늘에서 한없이 엄마를 그리워하며 엄마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장 교수는 의식이 없던 상태에서도 어머니가 몸을 주물러 주자 가느다란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고 한다. 또 죽음 직전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마지막 말도 ‘엄마’였다. 그의 삶의 원천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머니의 지고한 사랑이 자리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어머니는 어릴적(1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두 다리가 크게 불편했던 장 교수를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업어서 등하교를 시켰다. 육체적, 물리적 도움뿐만 아니라 그의 영혼에까지 영향을 미친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은 그의 삶의 곳곳에 녹아 그에게 용기와 희망, 그리고 불굴의 의지를 심어주었다.
이런 어머니의 영향 덕택으로 훗날 장 교수는 암환자와 장애우의 희망이 되고 또 지난 시련의 시기를 회고하여 “희망의 힘이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듯이 분명 희망은 운명도 뒤바꿀 수 있을 만큼 위대한 힘”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강의실에서 제자들에게, 또 매스컴과 글을 통해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자신의 체험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삶의 진실과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수 있었고, 하루하루 일상의 삶에 충실함으로서 우리 시대의 희망의 빛을 밝혀줄 수 있었다. 그의 저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속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회상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운명이 뒤통수를 쳐서 살을 다 깎아 먹고 뼈만 남는다 해도 울지 마라. 기본만 있으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 그것이 삶에 대한 의연함과 용기, 당당함과 인내의 힘이자 바로 희망의 힘이다. 그것이 바로 이제껏 질곡의 삶을 꿋꿋하고 아름답게 살아오신 어머니의 힘인 것이다.”
그늘에서 그녀와 함께한 그녀의 삶에 바탕이 되고 원동력이 되었던 그 어머니의 인고의 세월이야 더 이야기해 무엇하랴!
우리에게 주시기만 하려는 사랑이었기에 그런 ‘엄마’에게도 힘겨울 때가 있었을 것이고, 외로운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염없이 텅 비고 슬퍼 남모르게 눈물 나던 때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 ‘엄마’에게도 누군가에게 기댈 등이 필요하리라. 우린 그런 점들을 그냥 지나쳐서는 아니 된다. 다시 말해 우리가 그 ‘등’이 되어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작거나, 또는 충분하지 않아도…, 또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등을 내밀어 엄마가 지고 가던 사랑의 짐꾸러미를 힘껏 함께 지고 가야만 하지 않을지?…. 진흙투성이의 길이라 할지라도 땅바닥을 헤집고서라도…. ‘엄마’가 우리에게 그렇게 해주었던 것처럼!….
홍승식 신부님 홈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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